20191127 요한계시록 3:14-22 본문

영혼의 수고

20191127 요한계시록 3:14-22

형목사 2019. 11. 2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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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1127 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계 3:14–22). South Korea.

 

    배경이해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에의 동서가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은 상업도시다. 양모로 검은 모직 천을 풍부하게 생산하였다. ‘부르기아의 가루’로 알려진 안약 등 의약품과 의학학교로도 유명하다. 클레오파트라가 파묵칼레 온천 지대를 즐겨 찾을 정도로 휴양지로도 유명했다. 활발한 금융 거래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단지 물 사정이 좋지 않아서 반경 10-14Km 외부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363년 말시온의 도전에 맞서서 최초로 기독교 정경을 택한 곳이기도 하다.

 

    14-22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메시지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려움을 모르는 교회다. 핍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유대인 회당이나 주변 사회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언급도 없다. 발람, 니골라당, 이세벨과 같이 이상한 사상을 전파하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언급도 없다.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칭찬은 없고 책망만 열거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탄이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교회, 죽은 교회였다. 어떤 교회보다도 외부적으로 보이기에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현실에 안주했다. 현상 유지를 원했다. 아우구스투스 이래 성취된 로마의 평화는 도시의 번영을 위한 계기가 되었다. 도시는 군사의 목적보다는 산업과 상업과 금융에 적합했다. 유대인이 많았고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 개종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역과 장사를 위해 주변 사회와 잘 어울리는 것이 필요했다.

    사명에 대한 열정도,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력도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타협적인 태도이며 미적지근한 태도다.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가 등장할 때 이러한 태도의 본성이 드러난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거들먹거리며 양비론에 빠져 분별력과 판단력이 결핍되고 통찰력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싫은 소리 듣기를 싫어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다가 전투적인 성격, 교회의 야성을 상실했다, 사회에 잘 길들여졌다. 사회에 영적 치유나 생명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점이 약점이 될 수 있다. 무조건적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종교적인 위선 중의 위선은 무조건 회개했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적합하게, 유효적절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상세하게 맞춤형 처방을 내놓는다. 그들의 첫 번째 문제점은 기만적 신앙이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진리’로 판단하신다. 예수님은 부유하고 화려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겉만 보고 평가하지 않으시고, 내면의 실상을 보셨다, 그릇된 자기 인식을 지적하셨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들의 미지근한 신앙이 역겹다고 솔직하게 평가하신다. 그들에겐 복음으로 인한 박해는 없고 타협으로 인한 물질은 넘쳐났다. 외적인 안전과 평안을 하나님의 안정과 축복으로 착각하여 안주하였다. 열정은 사려졌고 열심은 떠났고 예리한 분별력도 잃어버렸다. 쉽게 타협하고 입술로만 고백했으며, 기계적인 예배만 있고 삶의 열매는 없었다. 그러고도 아쉬움이 없었다. 역겨운 외식과 자기도취의 신앙만 남았다.

    두 번째 문제점은 타협적 신앙이다. 궁핍했지만 실상은 부유했던 서머나 교회와는 달리, 라오디게아 교회는 너무 충족하였지만 영적으로는 둔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조건으로 부족함 없는 삶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실제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악할 대로 악했던 경제 구조속에서 ‘부자 되라’는 말은 축복도 덕담도 아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무조건 적인 회개이다. 무조건적인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종교적인 위선 중의 위선은 무조건 회개했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적합하게, 유효적절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인 분별력은 없이 물질과 번영에 가리워져 영적 가난과 치부에는 무감각하였다.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실천적 회개로 주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참모습을 보고 진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주님은 여전한 사랑으로 교회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신다. 교회가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을 좇다 마음과 생각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주님을 영접하여 사귐과 동행을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 앞에 진지하게 반응해야 한다, 친밀한 사귐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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