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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190817 에스겔 23:1-21

형목사 2019. 8. 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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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0817 에스겔 23:1-21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

23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5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7  그가 앗수르 중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 

8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바 되었더니 그가 그 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10  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을 행함이니라 

11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12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13  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14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15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 곧 그 고토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16  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 

17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18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 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19  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20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도다 

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겔 23:1–21). South Korea.

 

 

    에스겔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배교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배교의 역사였다. 16장은 예루살렘을 가나안적 기원까지 찾아 올라가 고발하고, 20장과 23장은 애굽 체류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음란의 역사로 규정한다.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배반의 역사로 거듭 주장하는 에스겔의 의도는 분명하다. 에스겔은 주류 신학이 주장하는 출애굽부터 시작하는 구속사를 완전히 뒤집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배반과 하나님의 심판 의지가 충돌하는 갈등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참으심 덕분에 지금까지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눈앞에 다가온 바벨론의 위협은 새로운 구속사의 시작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음란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1-4 두 자매 오홀라와 오홀리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각각 오홀라와 오홀리바로 의인화해 이들의 무절제한 음란을 고발하며 멸망의 심판을 선포한다. 고발은 이들의 종교적 음란(우상숭배)와 정치적 음란(동맹 정치)에 초점을 맞춘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한 어머니의 두 딸로,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음란에 깊이 빠졌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서로 앙숙이요 숙적이었지만, 고질적인 패역과 음행에 있어서는 서로 닮은 자매였다. 그들 모두 안으로는 율법을 저버린 총체적인 부정과 부패로 무너졌고, 밖으로는 하나님을 저버린 강대국과의 정치 외교적 행음을 일삼다가 유린당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막(오홀라, 오홀리바)의 아름다움과 정결함은 온데간데 없고 추악함과 더러움으로 얼룩졌다.

 

    5-10 오홀라의 음행

    음란한 옛 본석을 버리지 못한 사마리아(오홀라)는 앗수르의 힘과 명성에 매력을 느껴 자신의 몸을 행음으로 내어주고 그들의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혔다. 생명을 걸고 언약을 맺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분을 향한 정절과 신의마저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매료되어 사랑하고 의지하던 앗수르에게 치욕과 강탈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달콤한 음행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일깨우시고, 가혹하지만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오랜 죄의 습성을 끊길 바라셨다(27절).

 

    11-21 오홀리바의 음행

    사마리아보다 늘 도덕적,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있던 예루살렘은 음행으로 패망한 사마라이아의 역사를 보고서도 더 큰 음욕을 품고 더 심한 간음을 자행하며 패역의 길을 고집했다. 타락은 무지의 결과만은 아니다. 유다는 대상을 바꾸어보기도 하고, 옛 연인(애굽)을 그리워도 해보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도 쉽게 주지만 실증도 빨리 느꼈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자유는 쉽게 권태로워지고, 중독이 아니면 만족이 없으며, 외로움과 불안에 떨면서도 참된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역사였는가?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오늘의 교훈을 위함이다. 선조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거울 삼아 오늘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거룩함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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