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5 히브리서 4:1-13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605 히브리서 4:1-13

형목사 2019. 6. 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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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ㄱ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ㄴ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ㄱ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ㄷ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1)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ㄱ 시 95:11

ㄴ 창 2:2

ㄱ 시 95:11

ㄷ 시 95:7

1) 헬, 예수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히 4). South Korea.

 

    3:7에서 시작한 강해설교는 4장으로 넘어온다. 3:13-19의 결론 (‘끝까지 신실하라’)은 이 단락장의 결론도 된다. 여기서 설교자는 그 ‘끝’이 언제인지, ‘신실’해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더 상세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안식’이라는 용어와 다채로운 뜻을 세겨보고 신자들이 안식을 이미 맛보고 있다는 차원과 아직 들어갈 안식이 남아있다는 차원을 함께 설명한다.

 

    1-2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설교자는 먼저 ‘안식’이라는 단어를 주목한다. 이 단어는 그 의미의 빛깔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하나님 백성의 삶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궁극적으로는 안식은 종말에 누릴 구원의 상태를 표현한다.

    4장을 포함한 보다 큰 단락 (3:7-4:13)의 출발점은 출애굽 세대의 광야 여정 이야기였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그들의 소유가 되리라고 약속하셨고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이었다. 하지만 그 복음은 대부분의 출애굽 세대에게 성취되지 못했다. 그들의 불신실함 때문이었다. 복음을 듣고 얼마 동안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신실함을 견지하는 일,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 믿음이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다.

 

    3-5 창조 때 하나님이 쉬셨다

    조상들의 실패는 오늘을 위한 좋은 반례이면서 또한 두려움과 좌절의 이유도 된다. ‘그들이 못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에 응답이라도 하듯 설교자는 회중에게 ‘이미 믿고 있는 우리는 쉼에 들어 갑니다’라고 확언한다(3a절). 3b절의 전환은 다소 과격적이다. 

    하나님이 쉬셨다는 사실은 쉼이 단지 어떤 것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중단이 아님을 말해준다. 존재의 잠재성을 완전히 누리는 상태, 즉 완성의 상태가 쉼이다. 그래서 안식의 약속은 복음이다. 역사적 사건인 가나안 정착은 물론 종말에 누리게 될 ‘안식’조차도 창조 기사의 빛 아래서 이해될 수 있다. 태초는 종말과 잇닿아 있다. 종말은 태초로의 회귀 혹은 태초의 회복과 완성이다. 이 관점은 성경 전체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이기도 하다.

 

    6-11 아직 남아 있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앞서 설명한 대로 태초의 안식은 역사를 초월하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지속된다. 과거나 현재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열려있다는 것은 맛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옜적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도,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에게도, 히브리서의 청중에게도, 그리고 21세기에 히브리서를 익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안식이 열려 있다. 그래서 설교자는 안식을 미래의 일이 아닌 기정사실인 것 처럼 말한다(10b).

    시편 95편에서 전제된 영적 상황과 히브리서의 영적 상황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식에 들어갈 약속’, ‘안식할 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히브리서의 구원신학은 ‘이미 그러나 아직’위에 펼처진다는 면에서 신약성경 전체의 구원신학과 일맥상통한다. 성경 다른 곳에도 구원이 역사 속 현실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전망이라고 말하는 말씀은 많다. 히브리서 설교자가 다른 신양성경보다 더 분명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점은 ‘이미’ 얻은 안식이 ‘아직’ 얻지 못한 안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도 40년 광야 여정을 통과해야 했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해방과 구원 이후의 여정에서 불순종과 불신앙의 도전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 중 ‘거기에 닿지 못한다고 여겨질까’ 두려워하고(1절),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넘어지지 않도록’힘써야 한다(11절).

 

    12-13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서 (Coran Deo)’ 우리는 아무것도 감추거나 꾸며낼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모습조차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순종의 본’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감추려 한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감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것도 감출 수 없다. 그 말씀은 날선 칼과 같아서 우리 마음의 생각의 결과 의도의 방향까지도 분별해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 우리의 삶에 관한 결산을 해야 할 날이 반드시 온다.

 

    복음을 거절하면 안식도 없다.

    오늘 복음을 듣고 믿어 안식을 누리고 있는 우리 앞에도 영원한 안식의 약속이 남아 있지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도 남은 안식, 즉 영원한 구원에는 이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히 2:1, 3:12), 신앙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안식은 순종에서 온다.

    순종하지 않는 자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고하여 안식에 대한 약속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믿는 백성들이 누리고 있따. 다만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취소되거나 허락되지 않을 뿐이다.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해서 안식이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보다 4세기 후에 다윗이 시편 95편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안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안식은 힘써야 얻을 수 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먼저 건네주신 은혜로운 선물이지만, 믿음으로 힘써 그 초대에 반응할 때 참여할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예리안 칼날 같은 말씀으로 날마다 내 생각으로 뜻을 조명하여, 경건 밑에 감춰진 은말한 의도나 잠재의식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투명하게 살아갈 때, 마지막에 그분 앞에서 내 삶을 결산하는 날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깨달은 말씀의 순종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믿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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