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30. 06:45ㆍ영혼의 수고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은 전인적이고 총체적이다. 질병의 치유도,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도, 삭게오처럼 탐욕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도 구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원자와의 만남이다. 그분에 대한 깨달음과 경배다. 참 구원에 이르기 위해 알아야 할 바는 무엇인가?
3월 30일(주일)_ 누가복음 17:11-19
[눅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11-19절 열 명의 나병환자와 예수의 치유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를 통과하실 때의 사건이 기술된다. 그 길은 갈릴리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할 때 사마리아를 우회하기 위한 길이다. 두 지역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나병 환자 열 명은 주님을 만나서도 가까이하지 못하고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은혜를 구한다. 예수님 외에 달리 소망이 없던 이들은 절박하게 호소한다. 주님은 사회에서 제외되고 소외된 경계인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신다. 스스로 절망스러운 죄인으로 여기는 이들의 호소를 들으시는 참 구원자시다. 멀리서도 마음의 간절함을 보실 수 있고 숨죽인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
주님은 적극적인 치유를 하지 않으시고 다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다. 병이 나을 것을 전제로 치유를 검증받는 절차를 밟으라 하신다. 주님은 치유의 과정보다 제사장들의 검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소외된 이들의 공동체로의 회복에 더 관심을 보이신다. 놀랍게도 나병환자들은 가는 도중에 병이 낫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치유 행위가 없었음에도 의심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해 은혜를 경험한다. 믿음이란 말씀하신 분에 대한 전적인 신뢰며 구체적인 순종이다. 말씀 따라 내딛는 믿음의 걸음이 경이와 충격과 감격의 세계를 만나게 한다.
가는 도중에 치유를 경험한 나병 환자 중 한 명은 몸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한다. 예수님의 존재를 깨달은 그에게는 제사장의 검증과 사회적 회복이 중하지 않았다. 감사의 경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믿음을 보인 이는 놀랍게도 사마리아인이었다. 주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며 율법 의식에 사로잡혀 새 시대의 구원자를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을 질타하신다.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고, 감사하고, 경배하는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선언하신다. 그 사람은 육신의 치유를 넘어 희년의 주인이신 분을 만나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참 구원에 이르기 위해 알아야 할 바는 무엇인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 믿음 안에서 합당한 감사와 경배로 사는 것이 구원 가운데 사는 삶이다. 이 여정이 쉼 없이 이어질 때 하늘 안식의 영광에 이를 것이다. 구원은 ‘이미’와 ‘아직’의 평안과 긴장 속에서 광야를 걷는 역동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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