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화)_ 누가복음 18:1-14

2025. 4. 1. 20:07영혼의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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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은 유독 기도를 강조한다. ‘제자도’나 ‘하나님 나라’(17:20)와 기도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다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도하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항상 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말씀을 배우듯 기도도 배워야 한다.

 

 

 

4월 1일(화)_ 누가복음 18:1-14

 

[눅18:1-14]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8절 기도: 과부와 재판장 비유

과부의 기도는 항상 하는 기도이고 낙심하지 않고 하는 기도다. 들어주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기도가 아니다. 체면과 염치를 따지는 기도가 아니다. 들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어 혼신의 힘을 다해 드리는 기도다. 기도하는 자신의 자격 없음도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기도를 듣는 재판장의 인격마저 고려하지 않는 기도다. 아무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드린 기도였다. 기꺼이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물며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어찌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9-14절 기도: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바리새인의 기도는 과부의 기도와 너무 대조적이다. 그는 기도하는 자신과 기도를 받는 하나님을 모두 오해했다. 자신은 의롭고 하나님은 당연히 의로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분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는 오해했다. 바리새인, 그는 의롭지 않았고 불의했으며, 하나님은 자기 의에 충만한 불의한 자의 기도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자였고, 그래서 과부의 절실함이 없었다. 하나님이 절실하지 않은 자의 기도는 불의한 기도다.

세리의 기도는 과부의 기도를 닮았다. 하나님께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자신이 큰 죄인임을 알았고, 그 죄로는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여겼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주심뿐이었다. 하나님의 용납하심뿐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만 되면 그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낮추는 자는 높이시고 높이는 자는 낮추시는 하나님께 이 태도가 바로 의로움이다.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무엇일까?

절박해 보여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들어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다르다. 자신하던 사람은 거절당하고 자신 없던 사람이 받아들여진다. 주님의 평가는 세상의 평가와 다르다. 그러니 기도의 대상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거기에서 믿음이 나고 진심을 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