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8. 15:55ㆍ영혼의 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서’라는 말에 걸맞게 부와 가난의 문제에 대한 누가의 관심은 집요하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소유욕 과잉의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3월 28일(금)_ 누가복음 16:14-31
[눅16:14-31]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4-18절 율법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기에 재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규정된다. 그들은 외적으로 경건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면은 탐심으로 가득했다. 가난한 과부의 가산 삼키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막 12:40), 알량한 부를 의의 증거로 삼았다. 또한 오만으로 가득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 갈릴리 출신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그들의 뿌리 깊은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탐심도, 교만도, 하나님 보시기에 우상숭배와 진배없는 가증한 행위다. 사람들에게는 감출 수 있으나 하나님은 마음을 아신다. 위선적 신앙으로는 주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깨끗한 양심과 정직한 겸손을 가진 이가 의의 나라를 상속한다.
구약의 의로 자기 의를 세우려는 시대는 끝났다.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에는 위선을 감출 수 있었을지 몰라도 주님의 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중심을 보는 주님의 나라는 마음속 허위와 위선을 모조리 드러낸다. 스스로 옳게 여기며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는 이는 배제되고, 복음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낮추는 이는 들어간다. 하나님 나라는 새 시대, 새 백성을 위해 예비된 나라다. 그렇다고 율법의 권위와 효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이혼과 간음의 규례를 들어 이 나라가 구약을 근간으로 하여 성취하는 나라임을 보여주신다. 더불어 탐욕과 교만뿐 아니라 음행 또한 가증한 우상숭배임을 지적하신다.
19-31절 부자와 거지 비유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부자와 대문 밖에서 병든 몸으로 걸식하는 나사로의 비유를 이야기하신다. 둘의 운명은 죽음으로 반전된다.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드나,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당한다. 극심한 고통에 부자는 절실히 작은 긍휼을 구하나 외면당한다. 재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한 그에겐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찍어줄 친구가 없었다. 부자는 가족을 위해 나사로를 보내줄 것을 구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마저 거절하며 이미 말씀을 통해 충분히 기회가 주어지고 있음을 밝힌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 따라 죽음 이후의 운명이 결정된다. 자비와 긍휼은 천국을 얻게 하지만,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은 음부의 고통을 부르는 가장 심각한 죄다.
제자가 적극 피해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이 땅에서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가난한 이를 외면하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산 자들을 위해 마련된 천국은 없다. 탐심과 교만, 음란을 숭배한다면 쫓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져야 하며, 열매 있는 믿음만 구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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