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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619 고린도전서 12:1-11

형목사 2020. 6. 19.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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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619 고린도전서 12:1-11

 

성령의 은사

12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고전 12:1–11). South Korea.

 

    1-3 신령한 것들에 대해

    성령의 나타남은 구원 과정과 관련해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증거다. 메시아에게 임한 성령을 필두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구약 약속의 실현이다. 둘째, 신자들이 새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다. 특별히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임재의 증거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은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가르침이 필요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초자연적인 은사나 기적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진정한 역할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예수님의 주권 앞에 복종하게 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메시아 예수를 생명의 주로, 역사의 주관자로 인정하고 굴복하게 만드는 기적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다.

 

    4-11 성령과 은사

    은사가 다양한 것은 은사의 원천이신 삼위 하나님의 다양성 때문이다. 그분이 서로 다르지만 한마음과 한 뜻으로 존재하시듯이, 그분께서 우리를 다양하게 창조하시고 다양한 은사를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통해서 채움을 받아 삼위일체 공동체를 이루기를 바라신다. 그분들이 서로 섬김으로 하나로 존재하듯이 우리도 그 은사를 가지고 서로 섬김으로 하나 됨을 이루게 하신다. 따라서 자기만의 은사를 더 우월하게 여기거나 섬김과 사람의 목적으로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요, 그것은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은사가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은사를 주셨지만, 그 은사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주신 것이다. 한 성령께서 ‘자기 뜻대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눠주신다. 우리는 서로 우열을 나누면서 은사를 비교하지만 모두 성령께서 공공의 이익에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사를 견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바울은 방언이 좀 더 특별한 은사라고 생각하던 자들을 염두에 두고 다소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은사, 특히 방언을 맨 나중에 언급한다. 은사에 우열은 없다.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무슨 은사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더 크게 쓰임 받는 은사는 있지만, 한 은사만으로 충분한 일은 없고 사람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

 

    은사 사용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무엇인가?

    성경 속 은사가 지금도 지속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논란을 이렇게 풀고 싶다. 은사 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경계로 성령의 은사를 경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은사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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