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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613 고린도전서 8:1-13

형목사 2020. 6. 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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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613 고린도전서 8:1-13

 

우상에게 바친 제물

8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2)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2) 헬, 권리가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고전 8:1–13). South Korea.

 

    1-13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한 바울의 권고

    본문의 배경은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이방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음식이다. 당시 대부분 고기는 이방 신전에서 제물로 바치고 난 후 시장에 공급되었다. 이 고기를 우상숭배와 연결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둘째, 교회 어떤 사람들이 고기를 거리낌 없이 먹고 우상 신전 제의나 만찬에 참여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했으며 자신의 행위를 신학 논리로 정당화한 것 같다. 바울은 그들의 행태를 교정한다.

    우리 하나님만 유일하신 참 신이고 나머지는 다 우상이다. 따라서 우상은 신이 아니니 우상에게 제사하고 나온 제물이라고 해서 실제로 그 우상 때문에 부정해진 것은 아니다. 먹어도 된다.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구를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 지식을 사랑으로 쓰지 못하여 공동체 안에서 잘 모르기에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였다. 사랑 없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으로 쓰는 지식은 공동체를 세운다. 진정한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절제하고 지체에게 자신을 맞춰주는 모습이 성도의 모습이다. 최고의 지식인 사랑을 모르면 그 지식은 우리를 살리는 지식이 아니라 죽이는 지식이 되고, 공동체를 세우는 지식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지식이 된다.

    올바른 지식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린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형제 사랑이다. 주께서 죽으면서 구원하신 형제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고 실족시키면서까지 우상 제물 먹기를 고집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지식으로 자신의 자유를 합리화하는 것보다 더 성숙한 태도는 연약한 지체들이 깨달을 때까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에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

    지식과 사랑은 양자택일의 대상일 수 없다.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사용이다. 기도하자. 다 안다는 오만함에서 건져달라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 무지함에서 건져달라고. 더 온전한 진리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려는 나태함에서 나를 건져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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