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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190806 에스겔 17:11-24

형목사 2019. 8. 6.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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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0806 에스겔 17:11-24

 

비유의 해석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13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15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대적이 토성을 쌓으며 운제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주지 못하리라 

18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찌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높은 나무를 낮추고

2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찌라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겔 17:11–24). South Korea.

 

    11-21 비유 해석

    비유와 그 해석이 유다의 마지막 왕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를 들어야 할 대상은 ‘반역하는 족속’이 된 ‘이스라엘 족속’이다. 현재 문맥에서 ‘반역하는 족속’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유배민들을 가리킨다. 아마도 빠른 귀향을 고대하던 유배민들 가운데 일부는 예루살렘 왕궁의 반바벨론 정책에 동조적이었던 것 같다. 이에 맞서 에스겔은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의 뜻으로, 이스라엘 족속의 유일한 살길임을 선포한다.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서 유다 왕 여호야긴을 사로잡아가고, 바벨론 왕이 다윗 후손 가운데 한 사람 시드기야를 선택해서 그와 언약을 맺어 새 왕을 새우고, 이 새로 새운 왕이 바벨론을 배신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3-10절까지의 이야기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여호야긴 왕은 항전을 포기하고 태후와 신화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여호야긴의 삼촌이자 요시야의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위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과 조약을 맺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종주국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였고, 뿐만 아니라 이 당시 국가간의 조약은 일반적으로 나라와 나라의 의무를 약속하면서, 신들의 이름으로 맹새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시드기야가 이 조약을 깨트리는 것은 징계로 바벨론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까지 되는 것이다.

    바벨론으로 인해 왕이 된 시드기야는 애굽왕 바로가 바벨론을 공격하려고 하자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을 배신하였다. 그러나 애굽은 바벨론에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애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그들을 돕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특별히 시드기야는 자기의 아들이 죽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두 눈이 뽑혀 바벨론에 끌려가며 그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이 1-10절에 나온 비유 이야기의 실제 내용이다.

 

    22-24 다윗 왕조의 회복

    그러나 에스겔은 심판으로 마무리 하지 않는다. 에스겔은 회복을 이야기하는데, 여호와께서 백향목 꼭대기에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꺽어 높고 우뚝 솟은 산 위에 심으시며 그 가지에서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백향목이되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에 온갖 새들이 깃들어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예언은 시드기야의 유배와 죽음으로 다윗 왕조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포도나무가 아니라 백향목 가지에서 새 순이 돋는 것은 다윗 왕조의 회복이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여호야긴 또는 그의 후손을 통해 이뤄질 것을 시사한다. 주전 597년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자들이 하나님 백성과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한다. 24절은 다윗 왕조의 회복 약속에 회의적인 자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시드기야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애굽왕 바로와 그의 군대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배신했고, 언약을 파기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과 희망 없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현실은 포로생활이었고, 암담한 현실에 늘 좌절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과 희망이었다.

 

    결국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힘과 권력,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오직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신다.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찬 하루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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