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금)_ 누가복음 19:1-10

2025. 4. 4. 10:39영혼의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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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는 유독 ‘부자’ 이야기가 많다. 재물이 ‘구원’과 ‘제자도’와 관련 있어서다. 제자의 길은 예수의 부름에 ‘다 버림’에서 시작한다. 누가는 소유에 대한 태도 변화를 회심의 강력한 증거로 제시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재물이라는 바늘귀를 누가 통과할 수 있을까?

 

 

 

 

4월 4일(금)_ 누가복음 19:1-10

 

[눅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10절 삭개오의 등장

소유를 포기하지 못해 근심하며 떠난 부자와 달리 삭개오는 불의한 재물 때문에 괴로운 세리장이었다. 그는 예수를 보려고 돌무화과나무 위에까지 올라가는 ‘어린아이’였다. 가슴을 치며 불쌍히 기도하던 성전의 세리처럼, 그리고 여리고의 맹인처럼, 그도 자신에게 절망했고 그래서 예수를 갈망했다. 부자 관원과 달리(18:23), 그는 부와 높은 지위가 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예수를 영접할 마음의 처소를 마련한 사람이었다.

삭개오는 예수가 지나갈 만한 길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고, 예수는 그 돌무화과나무를 향해 나아가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다. 두 추구와 두 갈망이 만났다. 삭개오의 집은 천국이 되었고 성전이 되었다. 삭개오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영접했고, 예수님의 요구가 있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갱신된 삶을 약속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신다. 이제 삭개오에게 유대인들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었고, 그의 주인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자기 앞에 계신 예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예수가 찾던 그 사람이었다. 예수는 삭개오처럼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보다 예수를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 믿음의 사람들을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부르러 오셨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 즉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추구하러) 오신 분임을 몰랐다. 삭개오가 예수를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훨씬 더 강력하게 예수는 삭개오를 추구해(찾아) 오셨다.

 

 

 

진정한 회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삭개오의 결단은 새 주인 아래 사는 이에게 어울릴 만한 삶에 대한 공언이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기에 가능한 고백이다. 자신은 변하지 않고 영생만 취하려 한 부자 관원과 다르다. 잃은 자를 향한 주님의 열심이 회심을 낳았고, 주님의 환대가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가 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