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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622 고린도전서 14:1-19

형목사 2020. 6. 22.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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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622 고린도전서 14:1-19

 

방언과 예언

14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1)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2)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 헬, 소리 없는 것은

2) 혹 은사를 받지 못한 자가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고전 14:1–19). South Korea.

 

    1-5 예언과 방언

    은사를 열망하는 것은 사랑을 열망하는 일이다. 어떤 은사를 구할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은사를 구하는지이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구한 은사만이 나 자신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 사랑으로 구한 은사는 겸허하게 성령의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지만, 사적인 야망을 앞세운 은사는 질투와 경쟁을 낳을 수 있다.

 

    6-12 예언의 은사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면한 것은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기에 자기 덕을 세우는 데만 유익하지만, 예언은 사람들에게 알아듣게 말하는 것이기에 공동체를 세우고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으니 더 유익하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13-19 공적 예배 때 방언 사용에 대해

    방언의 은사를 받았거든 통역의 은사도 구하라고 한다. 방언은 자기는 물론이고 타인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에서 유익을 얻을 수는 없다. 자신은 감사하고 자기 덕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방언 경험에 대해서 문외한이거나 신앙의 초신자들은 방언으로 하는 기도나 찬양에 ‘아멘’으로 응답할 수 없고, 신앙에 도움을 얻지 못하며, 그러면 회중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방언은 축복이다. 바울도 방언을 많이 하고 그것을 감사한다. 바울은 방언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이들보다 더 많이 방언을 하고 있었지만, 못 알아듣는 일만 마디 방언을 하기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남을 가르치는 다섯 마디 말하기를 더 원했다. 함 된 기독교는 가슴이 메마른 지성 주의도, 머리가 텅 빈 감상주의도 아니다. 그러니 방언을 우월한 은사로 권장하거나 공예배 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동시에 지성만을 강조하여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제한해서도 안 된다.

 

    은사는 사모의 대상이다. 그럼 어떤 은사를 사모하는 것이 좋은가?

    은사는 사랑의 도구다. 따라서 나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는 또한 타인을 세우고 인도하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때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 은사를 사유화하거나 사적인 욕망 성취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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