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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331 마가복음 12:35-44

형목사 2020. 3. 31.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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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331 마가복음 12:35-44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마 22:41–46; 눅 20:41–44)

35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ㄴ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서기관들을 꾸짖으시다 (마 23:1–36; 눅 20:45–47)

38  ○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과부의 헌금 (눅 21:1–4)

41  ○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1)렙돈 곧 한 2)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ㄴ 시 110:1

1) 헬라 동전의 명칭

2) 로마 동전의 명칭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막 12:35–44). South Korea.

 

    35-37 메시아상 재정립

    예수님 당시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호칭하게 된 것에는 구약적 배경이 강하게 작용했다. 바벨론 포로기부터 이스라엘은 약 500년 동안 페르시아, 헬라, 이집트, 시리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약성경 특별히 예언서의 관점에서 형성해나갔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으로 보내셔서 자신들의 운명을 회복 시켜 가시리라 기대했다. 따라서 이 칭호는 다분히 정치적 요소가 강조될 가능성이 크고 예수님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당신의 나라의 왕이 되실 메시아를 ‘주’라고 불렀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지만, 그가 다윗 같은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지금도 메시아 예수님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격하하는 가르침에 주의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이나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등 공공의 가치에 이바지하는 메시아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 어떤 이상적인 인간도 할 수 없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속은 하나님이신 메시아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38-40 서기관들의 위선과 그들에 대한 심판

    서기관들은 성경을 연구하여 예수님이 메시아로 적합한지 검증하려 하였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메시아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다. 메시아 예수께서 이미 보여주신 삶과는 반대로 낮은 자리,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대접받는 높은 자리, 외식하는 기도,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악행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그릇된 앎의 실상을 보여주며, 가르치는 자의 이중성에 임하는 심판은 더 혹독할 것이다,

 

    41-44 과부의 헌금

    메시아의 나라에 합당한 것은 많은 헌금이 아니라 소유 전체다. 자신의 것은 처음부터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고, 많은 헌금으로 자기 의를 만들지 않고, 전부를 드리고도 드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나라다. 처음부터 우리 것이 없으니 주님이 보시는 것은 그 양이 아니라 그 마음이다. 풍족함도 주님으로부터, 가난함도 주님에게서 왔다. 풍족함이 자랑이 아니고 가난함이 수치가 아니다. 그 전부를 주님의 것으로 여기며 주님 뜻대로 쓰며, 또 자족함과 감사함으로 사는지 아닌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참 신앙인으로 서는 데 필요한 바는 무엇인가?

    이 땅을 참 신앙인으로 살다 가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륜이 쌓인다고 절로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선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지 않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려면 부단히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상대하는 세상이, 그 배후의 사탄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경건은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과 인격이 무르익을 때 은은한 향기로 전해진다. 경건을 흉내 내기 위한 수고를 그치고, 속사람을 단장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드리자. 더 깊은 이해와 성찰에 이르고, 순수한 헌신과 희생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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