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4 여호수아 8:18-29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914 여호수아 8:18-29

형목사 2019. 9. 14. 10:02
728x90

#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0914 여호수아 8:18-29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19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22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 편에서 혹은 저 편에서 쳐 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23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왔더라 

24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26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수 8:18–29). South Korea.

 

    18-25 아이 성을 정복하다

    아이와 벧엘 연합군은 아마 20-30km 거리의 요단 강 유역 광야(아라바)까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를 추격했다. 이때 여호와께서 직접 작전을 지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손에 쥐고 있는 단창을 높이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키라고 하신다. 아이 성을 하나님께서 넘겨주신다는 신호였다(18). 여호수아가 손을 드는 순간 복병들이 일제히 일어났다는 표현은 여호수아의 명령과 지시 하에 전투가 진행되었음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기법이다. 복병들은 군대가 모두 빠져나간 아이 성을 쉽게 점령하고 불을 놓았다. 아이의 군대는 성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복병이 아이 성을 점령하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기가 오른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군대는 전열이 흐트러진 아이 군대를 공격했다. 빈 성을 점령 했던 복병 부대도 나와 아이 군대를 반대쪽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받은 아이 군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여 도주했다. 여호수아는 아이로 달려가 복병 부대와 합류해서 아이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진멸함으로써 아이에 대한 헤렘 전쟁을 완수한다. 그날 전쟁에서 죽은 아이 주민의 숫자가 만 이천 명이다. 이 인원은 벧엘에서 합세한 군대를 포함한 숫자일 수 있다.

 

    26-29 아이 전쟁의 마무리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가 완료될 때까지 단창을 잡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단창은 여호와의 지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징표였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정복때와는 달리 아이 성의 모든 전리품들, 곧 가축과 물건들을 노략해서 이스라엘이 취하도록 허용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헤렘 전쟁은 경우에 따라 전리품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아이를 불사른다. 이 불사름은 어떤 것을 완전히 태워서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강조한 대로, 여기서 우리는 ‘진멸’의 방식이 반드시 대량 학살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피신과 도주, ‘내쫓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진멸의 반대는 상생 혹은 공생이다. 상생은 쌍방의 약조를 통해 우호적 관계가 정립됨으로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고 상생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과 어떠한언약도 맺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과의 상생의 길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문화가 이스라엘에 침투하게 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약은 아간의 길과는 정반대로 라합의 사례와 같이 개인적인 산앙의 투항을 통해 언약 백성에 합류하고, 심지어 기브온 족속과 같이 민족적 단위에서도 집단 개종을 통해 언약 백성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다. 이것은 쌍방의 상생과 교류를 위한 타협과는 다른 일이다.

 

    아이 성 전투의 승리에 이름을 붙인다면?

    승리는 훈련이나 무기에만 있지않다. 전심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협력할 때, 주께서 아름다운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하실 것이다.

728x90

'영혼의 수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915 여호수아 8:30-35  (0) 2019.09.15
20190913 여호수아 8:1-17  (0) 2019.09.14
20190912 여호수아 7:16-26  (0) 2019.09.12
20190911 여호수아 7:1-15  (0) 2019.09.11
20190910 여호수아 6:8-27  (0) 2019.09.1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