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3 데살로니가전서 2:13-20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703 데살로니가전서 2:13-20

형목사 2019. 7. 3.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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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묵상의숲 #매일성경

 

20190703 데살로니가전서 2:13-20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방문하다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살전 2:13–20). South Korea.

 

    데살로니가 전서 1-3장을 지배하는 주제인 ‘감사’ 주제의 3회 등장(1:2-5; 2:13; 3:9-13) 중에 두 번째에 속한다. 둘 다 ‘감사’ 안에 ‘닮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첫 번째 감사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와 주님을 닮아 감사하다고 말하고, 두 번째 감사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고난 중에 인내하는 모습이 유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닮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

 

    13-14 하나님의 말씀의 수용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처럼 고난을 본받음

    바울의 선교팀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한 것은 성도들이 선교팀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실재로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라하지 않고 ‘우리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은 말씀’이라고 한 것은 말씀이 설교와 강의를 통해 ‘들려진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바울과 선교팀은 적지 않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들려주었고 그것을 들음으로써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고 믿음이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 간의 공통점이 생겼는데, 바로 자기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것이다. ‘엔 크리스토 예수’ (예수 안에서)라는 전치사구는 두 그룹을 연결하는 것이 ‘핍박’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임을 보여준다. 유대의 성도나 데살로니가의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은 것이다.

 

    15-16 박해자들의 정체 : 유대인들

    바울은 박해자들의 정체가 유대인들이라고 말하며 이들의 핍박을 네 개의 분사를 통해 설명한다. (죽였고, 쫓아냈고, 기쁘시게 하지 않고, 대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한다.

 

    17-20 바울이 그들(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있길 원함

    바울은 특별히 가족과 관련된 언어들을 사용하여 그들에 대한 목양 일념을 나타낸다(7절의 자녀 - 8절의 적 먹이는 어머니 - 11절의 아비 - 17절의 형제들, 고아). 바울과 선교팀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떠난 후로 고아 같은 신세가 됐다고 말한다. 그들과 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큰 고통임을 시사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열매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바울에게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바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다(19). 바울은 그들 때문에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면류관이라 말하고 있다. 복음을 위하여 분투하고 땀 흘린 바울과 동료 선교사들에게, 그들을 통해 구원하신 영혼들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이다. 20절에서 바울은 그의 선교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영광과 기쁨을 이미 얻었음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종말에는 더 충만한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말씀의 사랑, 말씀의 역사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쉬지 않고 감사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떠났지만 말씀은 남아서 그들을 창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씀의 권능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감사하였다,

 

    사도의 소망과 기쁨

    사도에게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었다. 그들이 사도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사도는 오직 주님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주님의 자녀로 영접 받기만을 바라며 사역한 것이다. 탐심이 있을 리 없고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사욕을 취하려고 일할 리 없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살아내는가?

    나의 소망과 기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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