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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190511 역대상 13:1-14

형목사 2019. 5. 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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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를 옮기다 (삼하 6:1–11)

13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할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대상 13:1–14). South Korea.

 

5절에 따르면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다고 한다.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대략 12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게 된 배경은 사무엘상 4:1-7:2에 나온다. 

 

1-4절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길 계획을 함

    다윗은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올 계획을 한다. 두가지 조건이 맞으면 그 일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첫째는 백성들과 신하들의 동의다. 언약궤를 가져오는 일은 국가적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윗은 미리 이 일에 참여해야 할 백성들의 동의를 구하여 반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혼자 독선적으로 하는 것은 백성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백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둘째는 여호와의 허락을 받게 되면 가져오겠다고 한다. 여호와의 법궤는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호와의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허락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3절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와야 할 이유인데, 여기서 '사울 때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은 사울 시대에는 여호와께 대한 제대로 된 예배도 없고 신앙도 없어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5-8절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옮김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서 수레에 실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 시작은 행복했다. 다들 기뻐하며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소가 끄는 새 수레에 싣고 오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하나님의 궤를 보낼 때 하던 방식이다. 언약궤는 원래 레위인이 어깨에 메고 옮기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다윗과 신하들은 궤를 옮기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전에 이방인들이 궤를 옮겼던 방식을 따라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고 있다.

 

9-14절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둠

    기돈의 타작마당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들이 법궤를 떨어뜨렸고, 수레를 몰던 웃사는 손으로 법궤를 잡았다. 급한 마음에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법궤를 손으로 잡은 웃사에게 진노하시고 그를 쳐서 죽이셨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기쁨의 축제가 갑자기 공포의 장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게서 웃사를 죽이신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레위기에서 법궤는 가장 거룩한 것으로 대제사장만이 접근할 수 있고, 제사장만이 멜 수 있으며, 절대 다른 사람이 만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운반해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웃사는 법궤를 보호하려는 급한 마음에 법궤를 만짐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계시고 우리를 지키는 보호자이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높으심과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존재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다고 하여 우리가 함부로 접근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시다.

    11절을 보면 다윗은 이것에 대해 분노하는데, 10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대변한 것이다. 눈앞에서 하나님의 무서움을 실감한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법궤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왕조가 더욱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법궤 때문에 오히려 재앙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갑자기 만나는 재앙이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크심을 발견하듯이 승승장구하던 다윗도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졌다..

 

겸손한 청종, 귀 막은 불순종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시온 성으로 옮겨 오는 일에 대해 먼저 모든 지휘관들과 의논하고, 또 온 회중의 자발적인 동의를 구했다. 거룩한 열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공동체와 인격적인 소통과 합의를 잊지 않은 것이다. 소통을 통해 ‘온 이스라엘’이 함께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재위 기간 (40년)내내 하나님을 구하거나 찾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듣지 않았던 사울과 대조적이다. 지도자의 영적 방만은 백성의 영적 방종을 낳는다. 지도자의 겸손한 청종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이다.

 

선한 의도, 그릇된 방법

    예루살렘으로의 언약궤 운반은 분명 하나님 중심의 통치 이념을 천명하려는 선한 의도가 있었고, 또 온 백성의 자발적인 동의와 합의까지 끌어낸 합법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언약궤를 옮기는 방법'에 있어서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다. 고핫 자손의 어깨에 메어 운반하지 않고 황소가 끄는 수레를 이용하는 방식은, 율법의 규례가 아닌 블레셋의 풍습을 따른 것이다. 사람이 메고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이지만 명백한 불순종이다. 거룩한 명분이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 손종이 빠진 예배와 사역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순종의 복, 불순종의 진노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그것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거룩한 경계를 수용할 때 ‘두려움’이 아닌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에게 거룩한 명분을 내세워 불순종하고 있는 모습은 없는가?

 

내일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나는 어떤 순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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