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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9210319 누가복음 19:28-48

형목사 2021. 3. 19.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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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68일차

 

겉으로만 평화로운 것은 참 평화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힘겨운데 소란 없이 지낸다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죠. 로마의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라 강자들만을 위한 위장된 평화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말씀을 통해 한번 알아봅시다.

 

209210319 누가복음 19:28-48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다 (마 21:1–11; 막 11:1–11; 요 12:12–19)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1)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 (마 21:12–17; 막 11:15–19; 요 2:13–22)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ㄱ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ㄴ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1) 심판, 벧전 2:12 참조

ㄱ 사56:7

ㄴ 렘7:11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눅 19:28–48). South Korea.

 

 

28-44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면 다윗이나 모세 같이 백마를 타고 영웅적으로 입성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정복자가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겸손과 평화의 왕이심을 보여주신다(슥 9:9). 이 왕은 군림이 아닌 죽음을, 영광이 아닌 수치의 십자가를, 선동이 아닌 섬김을 통해 이 평화를 이룬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로마의 평화처럼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참 평화는 로마가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독립을 얻는 정치적인 전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메시아가 가져온 하나님 나라에서 임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찬송하며 맞이하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신다. 천사가 말한 평화의 왕(2:14)이 도착했지만, 예루살렘은 로마가 약속한 거짓 평화에 취해 있거나 군사적인 힘과 혁명으로 이룰 평화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예수 자신을 배반하거나 배척하여 죽일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참혹한 파멸과 파괴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은 자신을 죽일 도성이었지만,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뜨거운 눈물의 선포 없는 차가운 심판의 선포는 선포자 자신을 망가뜨린다. 주님은 우리를 보고 우실 것 같은가, 웃으실 것 같은가?

 

45-48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은 심판을 선고받을 만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전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과 제물을 가로채는 강도의 소굴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 기능이 정지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아버리신다. 이미 성전은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소통과 교제의 장이 아니라, 힘있는 자들의 탐욕과 무의미한 종교행위만 무성한 우상숭배의 공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을 흔드는 일이요 기득권의 본령에

도전하는 위험한 행위였다. 오늘 우리의 교회가 관계보다 공간을 숭배하고, 마음보다 물질을 중시하고, 낮은 곳이 아니라 힘있는 곳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나귀를 타신 주님이 보여주신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은 어떤 모습인가?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받으셨지만 세상에 평화를 이룰 왕이시다. 칼과 창으로 무장하려 하지 않고 비폭력 평화의 길을 가셨다. 지배 세력이 되려는 욕망을 버리고 겸손과 낮아짐, 희생과 섬김의 길을 가셨다. 우리도 능동적으로, 당당하게, 웃음과 해학으로 평화의 나라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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