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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10401 누가복음 23:13-25

형목사 2021. 4. 1.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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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79일차!

 

예수님이 다시 빌라도 앞에 서셨다. 석방하려는 빌라도와 죽이라고 외치는 무리의 대화가 진행된다. 비유대인이 구명에 앞장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예수님은 누구를 지지하고 싶으셨을까? 아니, 그분은 이 대화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을까?

 

20210401 누가복음 23:13-25

십자가에 못 박히게 예수를 넘기다 (마 27:15–26; 막 15:6–15; 요 18:39–19:16)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1)(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1) 어떤 사본에는, 17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 주더라’ 가 있음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눅 23:13–25). South Korea.

 

십자가 처형에 대해서...

십자가 처형은 지중해 동부에서 사용했던 형벌이었고 로마가 이후 이것을 도입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 외에도 페르시아, 앗시리아 등에서도 행해졌다. 로마는 살인자나 반역적인 노예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은 노예 형벌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규모의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알렉산더 얀내우스(재위 주전 102-76)는 자신을 반대한 수많은 바리새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유대전쟁사 1.97-98; 참조. 유대고대사 13.380). 주후 7년에 세금 징수에 반대해서 일어난 반란자들이 십자가에 처형당했고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로마 군대가 십자가형을 집행했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군인들은 유대인들을 잡았고 재미 삼아 투옥된 자들을, 이 모습 저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십자가 놓을 공간이 부족했고 시체를 매달 십자가 찾기가 어려웠다”(유대전쟁사 5.11.1). 유대인들에게 나무에 매달려 처형당한 것은 신명기 21:22-23을 떠올린다. 사해공동체에서는 산 채로 매달기도 했다(4Q169 3-4 i 7).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형수는 채찍을 맞아야 했고 처형 장소까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가로질러 가로 기둥을 메고 가야 했다. 죄수는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묶이거나 못으로 박혔다.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이처럼 십자가 처형은 극심한 고통뿐 아니라 공개적인으로 수치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대중에게 전시 효과를 일으켜 두려움을 심기 위함이다.

 

13-23 빌라도의 석방 시도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다고 공언한다. 야비한 헤롯마저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이나 무리의 고소가 얼마나 거짓되고 조작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진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십자가에 처형해달라고 거세게 요구한다. 빌라도는 무리의 집요하고 거센 요구에 못 이겨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넘겨준다. 진실보다 군중이 두려웠고 지금껏 쌓아온 아성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했다.

 

24-25 무리의 요구에 굴복하는 빌라도

얼마 전에는 예수를 잡으려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무리가 지금은 그들에게 매수되고 선동되어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던 무리도 예수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며 심문당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했을 것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예수는 변절과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도 그 무리 중의 한 사람은 아닌가?  

성중에서 민란을 주동하며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던 바라바는 놓임을 받고, 죄 없으신 예수님은 잔혹한 십자가 형벌에 넘겨진다. ‘아버지의 아들’(바라바)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예수)이 죽음과 형벌의 자리로 가신 것이다. ‘대속의 은혜’를 인정하고 깨달을 때, 우리는 내 뜻과 내 힘과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나라를 세우려는 반역을 멈추게 될 것이다. 나의 나라, 나의 꿈만을 좇았던 바라바 같은 나를 살리신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말자.

 

 

예수님은 석방과 십자가형 중 무엇을 원하셨을까?

삶은 우리가 결정한 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상황에 끌려가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은 있다. 잘 분별하며 살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을 신뢰하고 바른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주의 생명의 통로가 되는 삶을 기대하는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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