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6 에스겔 11:14-25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726 에스겔 11:14-25

형목사 2019. 7. 26.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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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0726 에스겔 11:14-25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르시다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5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19  내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1)굳은 마음을 제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0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1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시다

22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24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25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1) 돌

2) 고기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겔 11:14–25). South Korea.

 

    14-21절 유배민들의 구원

    현재의 문맥에서 14-21절은 바로 앞에 나오는 에스겔의 중보기도(13절)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다. 주전 597년경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사이에는 계속되는 긴장감과 반목이 있었다. 에스겔서의 연대기들이 보여주듯이, 유배민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보좌에 앉혀진 시드기야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온 여호야김을 여전히 유다의 적법한 왕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맞서 예루살렘의 새로운 지배 세력은 구 지배 세력에 속했던 제 1차 바벨론 유배민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난 자들로 정죄하였다. 여러 면에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공의의 시각에서 보자면, 유배가 하나님의 징벌에 속하기에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로 바벨론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된다. 성전 중심적 시각에서 보자면, 바벨론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없어 제사가 불가능하고, 그곳에 사는 유배민들은 제의적으로 부정하기에 여호와를 찾거나 부를 수도 없다. 유배민들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과 신학으로부터도 유배를 당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결정은 신학과 전통 이상이었다. 하나님은 유배민들의 손을 들어주신다. 이미 징벌을 받은 유배민들에게는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이 선고된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주장과 달리 유배는 뿌리로부터의 갈림이 아니라, 가나안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준비였다. 하나님 백성의 적통이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주어진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중심의 제한된 시각에 갇힌 백성에게 제한 없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통치 능력을 보여주며, 절망 중에 있는 백성에게 회복의 서광을 비춰준다.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유배민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뿌리에서 잘려나간 자들로 간주한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사는 자들만 여호와께 속한 자들이고, 바벨론으로 쫓겨난 자들은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난 자들로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없다. ‘네 형제 곧 네 형제와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은 간접적으로 예루살렘 주민의 이기심을 고발한다. 유배민들이 에스겔의 형제인 것처럼 예루살렘 주민도 이들을 형제로 생각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주민은 재앙 당한 형제를 도와주기는커녕 형제의 어려움을 이용해 제 몫을 채우려 했다. 말씀으로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나 중심으로 지체의 상황을 해석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언하신 여호와께서는 유배민들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쫓아내셨지만, 이들이 여호와로부터 완전히 버림 받은 것은 아니다. 성전도 없고 제의적으로 부정한 이방 따엥 살지만, 여호와를 만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주시기에 유배지에서도 여호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16절). 유배가 징벌로 촉발됐지만, 다른 한편 여호와께서 이들과 함께하시는 (영적)회복의 기간이기도 하다.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이들을 민족들 가운데서 모아 고토로 데려가 ‘이스라엘 땅’을 주시고(17절), 돌아온 유배민들은 가나안 땅에서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치워버린다(18). 유배민들의 귀환으로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죄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귀향민이 다시 죄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한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돌 같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 당신의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신다(19). 여호와께서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에 다시는 언약을 파기하는 일이 없어진다(20).’한 마음’은 두 마음에 대조되는 표현으로 나뉘지 않은 마음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여호와와 더불어 우상을 숭배하는 혼합주의였다. 심판으로 정화된 심령에 새 맘과 새영을 주심으로 이제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새 언약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주의 영이 주도 하실 때 진행된다. 인간의 능력과 힘이 아닌 주의 영을 의지할 때 우리 자신과 공동체는 비로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질 것이다.

 

    22-23절 예루살렘을 떠나는 여호와의 영광

    성전 동문에 있던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동쪽 산까지 물러간다. 이제 예루살렘에 심판이 임하여 유다가 완전히 멸망할 날이 거의 다 된것이다. 인간의 기대와 확신을 전복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24-25절 환상을 맺는 말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원리로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은햬 아니면 사랑이 없다.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다. 하지만 은혜가 만능 키는 아니다. 모든 죄에 눈감고, 회개 하지 않아도 되고, 거짓 안정감에 빠져 살아도 되게 하는 출구가 아니다. 은혜는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가장 심각한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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