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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마태복음 27:1-10 본문
32)
27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유다가 자살하다 (행 1:18–19)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 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ㄱ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 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ㄱ 슥 11:12, 13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마 27:1–10). South Korea.
-유다의 후회와 자살 (27:1-5)
신성모독죄를 찾아냈으면서도 새벽까지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를 죽일 방법을 찾고자 모의했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신성모독죄라는 종교적인 죄목이 사형을 선고할 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은 신성모독 즉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에 대해서 그것을 수호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뒤 흔드는 예수를 죽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지 않으셨고, 또 아들이 순종하여 죽음에 나아가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증인을 모으고, 계략을 모은들 그들은 예수님께 손 하나 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승리라고 환호하는 일에 부러워하지도 말고, 세상이 실패라고 조롱하는 일에 절망하지도 말자!
유다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배신을 뉘우치고 예수님을 판 돈을 돌려준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진정한 회개는 3가지의 회개가 있어야 한다. 지적인 회개, 감정적인 회개, 의지적인 회개이다. 죄를 이성적으로 꺠달아야하고, 감정적으로 그 죄로 인해 슬퍼해야 하고, 그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예수께 의지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죄를 꺠닫고 감정적으로도 슬퍼했지만 예수님께 돌아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양심은 있지만 신심(신앙)은 없는 모습이다. 우리에게 신심(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지은 그 어떠한 죄도 예수님은 용서하실 수 있으시다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상상력이지만, 유다가 만일 예수님을 찾아가 회개했다면 예수님은 분명히 유다를 용서하셨을 것이고, 유다는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유다같은 죄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는 것이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무죄한 피의 값 (27:6-10)
유다가 던져놓고 간 은 30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주님의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예레미야오 스가랴의 말씀을 이루는 구약의 성취를 통해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신 것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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