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1 마태복음 22:23-33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401 마태복음 22:23-33

형목사 2019. 4. 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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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논쟁 (막 12:18–27; 눅 20:27–40)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ㄱ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ㄱ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ㄱ 신 25:5

ㄱ 출 3:6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마 22:23–33). South Korea.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는 사두개인들 (22:23-31)

    사두개인 그들은 누구인가?

    사두개인들은 내세, 즉 영혼의 불멸이나 부활을 믿지 않았따. 이는 사두개인들에 대한 유대 자료가 공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사두개인들이 내세 사상에 대한 요세푸스의 설명은 신약(행 3:2, 23:8)과 랍비 문언의 진술과 같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23:8) ‘사두개인들은 또한 영혼의 물멸 기간을 믿지 않으며, 음부에서 받을 형벌과 대가를 믿지 않는다’(요세푸스, 유대전쟁사, 2:165). 특히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에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오경에는 부활의 근거가 없다고 확신했다. 내세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생각은 그들의 사회/종교적 지위와 관련이 있따.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한 바리세파나 에세네파와 달리, 다음 세상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혅재의 질서에 만족하였다. 사두개인은 사실상 국내 정치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권력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의 다음 생에보다는 이 세상의 내부 문제를 지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세에 대한 표준화된 교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것에 대해서나 개인이 죽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있었다. 반면 유대 순교자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대단히 중요했다.

 

    사두개인들은 바로 앞에 22:15-22에 나오는 바리새인들 처럼 위선자의 모습이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고자 부활에 대해서 일부로 물어본다. 그 당시 유대 율법 가운데 하나인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를 들어서 질문을 던진다. 7형제가 있었는데 한 형제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다음 형제가 그 아내를 취하였는데 동일 하게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고, 나머지 5명도 동일하게 죽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부활 시키실 때 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이 잘못되었고, 그 질문은 부활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성경의 무지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설명하시기를 부활한 사람은 땅에서 살았던 사람과 동일한 인물이지만(연속성), 부활한 사람의 몸은 썩지 않는 몸으로, 천상의 존재로 변화될 것이기에, 그 사람의 상태 혹은 조건은 달라진다(불연속성).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 (22:32-33)

    또한 그들의 주장 (부활이 없다)에 대해서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사두개인들에게도 부활이 주어졌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신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의 부활은 하나님과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본인을 소개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코 잊으시거나, 없이 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그들은 늘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즉, 부활은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능력을 근거로 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부활 신앙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근거를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두고 있다.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는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죽어도 하나님과 함께 교제 가운데 살아 있다.

    “부활 신앙”은  내가 죽어도 산다는 것이 아니라 몸이 사나 죽으나 하나님과 함께 언제나 ‘살아서’ 교제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리고 부활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이해가 아닌 인격에서 나오는 믿음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여 나온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믿음이다. 사두개인들이 모세 오경의 창조주를 진실로 믿었다면 첫 창조의 하나님께서 부활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실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인격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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