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3 마태복음 23:1-12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403 마태복음 23:1-12

형목사 2019. 4. 3. 05:32
728x90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꾸짖으시다 (막 12:38–40; 눅 11:37–52; 20:45–47)

23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마 23:1–12). South Korea.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 (34:2-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경계해야 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를 언급하시고,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할 덕목을 가르치신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앉았다고 하는 ‘모세의 자리’는 그들의 유대인들을 교육하고 다스리는 권위를 가리킨다. 특별히 이들이 말하는 바는 지키고 행위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들과 언행들과 불일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셨고,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주의하고 경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은 그들이 '말하는 바'는 단순히 그들이 낭독하는 율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들의 ‘행위’는 율법 해석을 포함한 여러 행동들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구약 내용 자체를 낭독하여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들의 해석과 그에 따른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경우들은 마태복음 안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가 5:1-3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출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적절히 인지하지만, 그러한 성경 지식을 오히려 그리스도를 죽이는 데 활용한다(2:4-6).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관한 신명기 24:1-4의 규정을 정확하게 인용하지만, 그 규정이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19:70).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지만, 그가 다윗의 주도 되신다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다(22:42).

    이들은 성경을 원어로 읽을 줄은 알지만, 그 성경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는데는 실패하고,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매일 읽고, 기도도 매일 하지만, 과연 우리는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하는 성경 읽기는 우리를 바리새인들 처럼 살아가게 만들 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율법해석과 행동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신다. 먼저 그들의 율법해석의 문제점은 ‘무거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고 자신들은 손가락 조차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가지 율법에 수천가지 규례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무거운 규례의 짐을 사람의 어깨에 지우지만, 정작 사람들이 그 짐을 지고 나르는 데에는 자신들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이처럼 자비롭지 못한 그들의 모습은,마음이 온유햐고 겸손하여 가벼운 짐을 지울 뿐 아니라 그 짐을 쉽게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타인에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 이야기 하는 모습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위선자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모습은 교회 안에서는 직분을 가졌을 때… 교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면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람들을 얽메이고,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남에게 적용하기보다, 나에게 적용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들의 행동의 문제점들은 옷(5절), 모임에서의 위치(6절), 인사를 받는 것(7절)으로 드러난다. 경문띠를 넓게 하고 옷술을 길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성경을 많이, 열심히 암송하고 순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다(5절). 그들은 잔치의 윗자리, 즉 가장 존중 받는 자리에 앉음으로써 자신이 최고로 가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을 즐겨했다. 또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원했따.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종교지도자들은 높은 수준의 경건을 실재로 행하지도 않으면서도 모범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척 했다. 마음의 관심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겉 모양 뿐인 신앙 생활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나올 수록 우리는 중심을 살펴야 한다. 내가 신앙 생활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와 사랑에 작은 마음이라도 표현하고자 신앙생활 하는 것이며, 그 사실이 기뻐서 신앙생활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자들의 행위(23:8-12)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를 향해 어떻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를 피할 수 있는지 말씀하신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랍비(8절), 아버지(9절), 지도자(10절)로 불리는 것을 즐기지 않도록 경고하고 이유를 설명하신다. 제자들이 랍비라고 불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선생은 오직 한분 그리스도이시고 그들은 모두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기초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형제들 사이에 권위주의 체계나 높고 낮음의 계층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 분 그리스도를 따르는 평등한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불필요한 칭송으로 특정인이 높임 받는 것은 예수께서 책망하신 위선의 길에 가깝다. 둘째, 예수님은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것을 경고하신다(9절). ‘하늘에 계신 분’을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 교회의 정체성은 형제와 자매의 관계다. 형제의 개념은 한 아버지 아래서 서로 평등과 결속력을 전달한다. 공동의 가치를 서로 존중해야 한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지도자로 불림을 받지 말라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도자 지도자 이시지만 겸손히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가르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 지도자를 따르면 공동체는 분파주의로 흐리기 쉽고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다. 제자 공동체는 한 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가 되어야한다.

728x90

'영혼의 수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406 마태복음 23:29-39  (0) 2019.04.05
20190404 마태복음 23:13-28  (0) 2019.04.04
20190402 마태복음 22:34-46  (0) 2019.04.02
20190401 마태복음 22:23-33  (0) 2019.04.01
20190331 마태복음 22:15-22  (0) 2019.03.3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