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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914 창세기 44:18-34

형목사 2020. 9. 1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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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914 창세기 44:18-34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찌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 하면 내려 가려니와 말째 아우가 우리와 함께함이 아니면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31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34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 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창 44:18–34). South Korea.

 

    18-24 베냐민을 구하기 위한 유다의 탄원

    유다는 베냐민을 고향을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간청한다. 첫째, 베냐민은 노년에 얻은 아들로 그 어미(라헬)에게 낳은 다른 자식(요셉)이 죽고 없어서, 이 아들에게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둘째, 아버지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이 하나와 같아서, 베냐민이 안전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아버지는 살 의욕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기심에 눈멀어 아버지가 받을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25-31 아버지의 슬픔을 호소하는 유다

    유다는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베냐민을 보내 달라고 호소할 뿐 아니라 자신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청한다. 지난번에는 요셉을 죽이려던 다른 형제들에게 ‘몸값’을 받고 미디안 상인에게 ‘종’으로 팔자고 설득하여 ‘소극적’으로 동생의 목숨을 건졌던 유다가, 이제는 직접 자신이 그 ‘몸값’이 되어 ‘종’이 될 위기에 처한 동생 베냐민과 그 동생의 생명과 결탁된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구하려는 이런 유다의 태도는 유다의 육신 적인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원 사역을 예표하고 있다.

 

    32-34 베냐민 대신 담보물을 자처하는 유다

    더 나아가 유다는 이제 자신만 남아 있겠다고 한다. 아이와 형제들만 아버지에게 보내고 자신만 남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유다의 관심은 오로지 동생과 아버지의 안전뿐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동생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넘겼던 그 옛날의 형이 아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심 아니겠는가?

 

    공동체 형성에서 ‘희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유다는 가족 안에 불화의 깊은 골을 희생적인 중보로 메워나간다. 형제들의 잘못에 소극적으로 방관하던 그가 적극적인 치유자로 변모한다. 상처와 아픔이 없는 공동체가 있을까. 고통을 대신 짊어지려는 한 사람에 의해 아픔은 극복되고 공동체는 한층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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