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6 누가복음 11:37-54 본문

영혼의 수고

20200206 누가복음 11:37-54

형목사 2021. 2. 6. 04:24
728x90

#말씀묵상 28일차!!

 

오늘은 즐거운 주말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즐겁게 보냅시다~ 날씨도 좋으니까 우리 밖으로 나가볼까요?! 

오늘은 선생님들이 여러분을 위해 소예배실 대청소를 하는 날이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예배할 공간을 정리하고 예쁘게 꾸며놓을께요~! 하루 빨리 만나길~!!!!!

 

오늘 말씀 묵상하기 전에 이 이야기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주전자속 개구리 이야기 혹시 알아요? 뜨거운 물에 갑자기 개구리를 넣으면 튀어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온도 변화를 못느끼고 죽는대요. 익숙함에 젖어 죽는거죠. 신앙도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우리가 익숙함에 젖으면 어느새 우리 신앙이 무너질수도 있어요! 오늘은 마음을 새롭게하고 말씀을 한번 읽어봐요!!

 

20200206 누가복음 11:37-54

 

바리새인과 율법교사 (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4)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1)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4) 5:29 난하주를보라

1) 헬, 보이지않는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눅 11:37–54). South Korea.

 

 

37-5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판하는 예수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같이 식사하면서도 그분과 교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가 손을 씻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그들이 정결 규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마땅하지만, 동시에 탐욕과 악독함이 가득한 자신들의 마음을 더 이상히 여겨야 했다. 사람의 겉만 아니라 속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꾸민 겉보다는 속에 품은 동기와 의도를 보신다. 마음으로부터 말씀을 지키고 있는지를 겉으로 드러난 일의 결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적 의미는 붙들었지만, 그 근본정신은 잃어버렸다. 즉,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데는 남다른 열심을 보였지만, 정작 그 율법의 참 정신과 의도인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린 것이다.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했지 겸손하게 이웃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바리새인들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그들도 모르게 부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었다. 그들의 연극은 자신들은 물론이고 공동체까지 부정하게 했다.

율법 교사들은 스스로는 전혀 지키지도 않고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의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고 있었다. 율법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기쁨과 자유로움은 없고 죄책감과 패배감에 젖어 살게 했다. 율법에 대한 지식은 배우는 자들과 지신을 구별하는 도구였을 뿐이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칠 수 있었을 뿐인데 그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알았다면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율법 교사들은 율법을 왜곡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 나라와 왕을 거절했고, 자신들에게 배우는 이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이 되었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의 문제는 무엇인가?

성찰과 회개와 추구가 빠진 종교는 자존심의 껍데기만 남는다. 당시 종교인들은 예수님의 지적에 모욕감을 느끼고 죽이려 했다. 이것이 그때만의 일이겠는가? 우리 역시 자존심 세우느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예수님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두려운 일이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728x90

'영혼의 수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207 누가복음 12:13-34  (0) 2021.02.07
20210207 누가복음 12:1-12  (0) 2021.02.07
20210205 누가복음 11:27-36  (0) 2021.02.05
20210204 누가복음 11:14-26  (0) 2021.02.04
20210203 누가복음 11:1-13  (0) 2021.02.0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