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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411 마가복음 15:33-47

형목사 2020. 4.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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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411 마가복음 15:33-47

 

운명하시다 (마 27:45–61; 눅 23:44–56; 요 19:28–30, 38–42)

33  ○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42  ○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막 15:33–47). South Korea.

 

    33-38 운명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최후의 외침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것을 원망하는 외침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라는 신뢰의 외침이요, 이 죽음으로 많은 생명을 살릴 것에 대한 확신 가득한 증언이다. 하늘이 찢어지고 하늘의 소리가 들림으로 시작한 공생애 사역이 예수의 큰 소리와 성소 휘장이 찢어짐으로 마무리된다.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실한 마무리였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다.

 

    39-41 믿음의 사람들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는 일에 책임을 맡은 로마의 용병 백부장이 고난과 죽음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예수를 보면서, 그 순간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였다. 마가복음은 이 수난 받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역설의 복음인데, 그 복음을 가장 극적으로 인정한 사람으로 예수를 죽인 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통쾌한 승리가 바로 이 가장 처절한 패배의 순간에 주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남자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섬긴’ 여자들이 죽음으로 인류를 ‘섬긴’ 예수의 십자가 곁을 지킨다. 누가 참 제자인가? 예수의 죽음에 화답한 자들이 참 제자다.

 

    42-47 매장되시는 주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반역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구한다. 예수의 처형에 관여한 공회원이 예수를 위해 호의적인 제안을 한 것은 정치적 오해를 일으킬 만한 매우 위험한 시도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묘에 중죄인 예수를 품위 있게 매장하여 고난받는 종이 ‘부자와 함께 묻힌다’는 성경의 예언을 이룬다(사35:9).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이름 없는 여인처럼, 아리마대 요셉은 수난받는 예수를 왕의 죽음이 되게 한 사람이다.

 

    십자가가 지나간 그 자라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강렬한 추위는 형태 무너뜨린다고 했던가. 처마 밑 고드름은 흐름을 멈추고 사물로 전락하는가 하면, 삶도 거리도 일시 정지 상태에 이른다. 도심도 거대한 얼음 기둥이 된 도심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드러워진 거리가 그러했다. 하지만 사망을 비껴낸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들을 통해 새 풍경은 드러난다.

    공생애 기간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장례 현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측근으로 몰려 위험에 처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어떤 순간, 어떤 모습에도 그분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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