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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00224 창세기 33:1-20

형목사 2020. 2.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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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200224 창세기 33:1-20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33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6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두라 

10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1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2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앞에 그 장막을 치고 

19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20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3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1 히, 막

2 막들

3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창 33:1–20). South Korea.

 

    1-4 야곱과 에서의 상봉

    밤새 하나님과 만남에서 얻은 평안과 에서의 군대 400인을 앞둔 불안이 야곱의 맘속에 교차한다. 에서의 공격에 대비하여 자신의 애정 정도에 따라 가족을 셋으로 나누어 배치하지만, 이전처럼 비겁하게 진 가운데나 맨 뒤에 있지 않고, 맨 앞으로 나아가 맨 먼저 에서를 만난다.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태산만 한 불신과 불안을 제치고 있는 것이다.

 

    5-12 예상치 못한 에서의 환대

    에서는 야곱의 상상과는 달리 살기등등하고 분노를 주체 못 하는 형이 아니었다. 20년 만에 찾아온 동생을 환대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한걸음에 먼 길을 내달려 온 너그럽고 통 큰 형이었다. 라반처럼 도중에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는지 알 수 없지만, 늘 자기 판단으로 이기기만 한 듯 보이는 야곱이 실상 얼마나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제한적인 사람인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내 상상이 만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기도조차 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의 상상력과 판단력을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에서에게 일곱 번이나 절하고, 강권하여 ‘'예물'을 쥐여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야곱이 에서에게서 빼앗은 장자의 축복을 돌려주는 모습을 본다. 이런 식으로 속임수로 형의 권리를 빼앗은 것이 잘못임을 시인하고 있다. 야곱과 그 후손이 받을 축복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고 베푼 선물로서의 축복이지, 물불 가리지 않고 쟁취한 야곱의 축복이 아니었다. 축복에 대한 야곱의 인간적인 집착을 미화할 것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야곱에 더 주목해야 한다.

 

    13-20 야곱의 장착과 정착 기념물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가 기다리는 브엘세바나, 자신이 성전을 짓겠다고 서원한 벧엘로 돌아가지 않고 숙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는 부족한 사람이다.

 

    화해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마음을 닫고 있진 않은가?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은혜를 입는다는 것,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결과일 때가 많다. 하나님의 물밑 작업 덕에 이만큼 화해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전방위 외교 덕에 이만큼 윤택한 관계를 유지하는지 모른다. 나의 화해 법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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