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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고

20210129 누가복음 9:37-50

형목사 2021. 1. 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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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20일차!!

 

우와 우리 벌써 함께 말씀을 묵상한 지 20일 차입니다!! 다들 열심히 묵상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여러분이 자라서 고민과 어려움을 대할 때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돼줄 겁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묵상으로 시작합시다~

금요팅!

 

20210129 누가복음 9:37-50

 

귀신 들린 아이를 낫게 하시다 (마 17:14–18; 막 9:14–27)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마 17:22–23; 막 9:30–32)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누가 크냐 (마 18:1–5; 막 9:33–37)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너희를 위하는 사람 (막 9:38–40)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눅 9:37–50). South Korea.

 

 

37-43a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영광스러운 산 위의 경험을 뒤로하고 내려온 산 아래에서 예수님은 귀신에게 유린당하는 한 아이와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무능한 제자들과 맞닥뜨리신다. 믿음 없고 패역한 시대, 즉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제자들의 무능을 초래했다.

 

43b-45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영광의 산을 내려온 직후에 인자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주신다. 그것이 예수의 정체성이고 또한 제자들의 정체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자의 수난과 죽음은 동떨어진 채 그와 제자들을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 충분한 의미를 숨기셨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묻기도 두려워했다. 그것이 문제다. 자신들의 기대와 예수님의 행보가 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던 것인데, 오해한 채로는, 동상이몽으로는, 같이 있어도 따르는 게 아니다. 질문하라. 그래서 확인하라. 그것은 내 욕망을 향한 질문이다. 주님의 대답보다는 나의 대답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46-48 누가 큰 자인지 논쟁하는 제자들

인자의 죽음을 가르치시는 길 위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을 벌였다.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제자로서는 더욱이 그렇게 주님과 전혀 다른 맘을 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남을 죽여서 내가 올라서는 나라라면, 하나님 나라는 나를 죽여서 남을 섬기고 올리는 나라다. 같은 약한 존재인 어린아이를 영접하듯 누구든 영접하는 곳이다. 스스로 가장 작은 자로 여기고 남을 섬기면 가장 큰 자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진가를 알아주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면, 그런 사람을 더욱 업신여기고 이용하는 곳이 세상이다. 더 크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곳은 적어도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49-50 큰 자의 권위를 행사하고 싶은 요한

진리를 따라 공동체로 모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는 늘 베타성과 독선, 배제의 위험이 있음을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이를 금하자고 한 요한의 제안은 '주의 이름'이 자신들만의 요술방망이인 줄로 아는 착각이고 오만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자의 기도는 그가 누구든지 들어주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게 하신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은 아니다. 더욱이 특정한 그룹만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도 아니다.

 

제자들의 무능력과 어리석은 논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욕망을 낳았고 그릇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제자들은 오만했고, 무지했고, 무법적인 행태를 보였다. 해서는 안 될 경쟁을 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쫓아야 할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다. 예수님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는 우리를 무능력과 교만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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