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3 에스겔 9:1-11 본문

영혼의 수고

20190723 에스겔 9:1-11

형목사 2019. 7. 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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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매일성경 #묵상의숲

 

20190723 에스겔 9:1-11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다

9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1)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1) 혹 장로

 The Holy Bible: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겔 9:1–11). South Korea.

 

    1-6 심판 명령과 명령을 집행하는 자들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진 예루살렘과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손에 ‘죽이는 무기’를 든 자들을 소환하신다. 그리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심판이 철저하고도 전면적으로 실행된다. 이 심판에는 남녀노소 예외가 없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긍휼을 배풀지도 말라고 하신다.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복음도 아니다.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하기 어려우 시대지만, 우리는 담대히 은혜에 합당한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심판 가운데도 남은자가 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며 그 가운데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은 남겨두신다. 불의에 동참하지 않고 신앙의 순전함을 지킨 이들을 주께서도 지켜 주실 것이다. 불편함과 고난을 자처하는 이들을 변호해주실 것이다. 그들의 비통함을 위로해주실 것이다. 그 위로와 구원을 믿고 불의한 시대가 주는 오욕을 명예로 여기면서 주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라고 하신다. 성전의 늙은자들, 즉 장로들과 이교제사에 열중한 지도자들부터 심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성전은 건물에 불과하며 생명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심판이 시작된다면 교회부터 시작될 것이다. 말씀을 맡기신 지도자들부터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8-10 에스겔과 여호와

    남은 자의 구원을 호소하는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에스겔의 기도마저 소용없을 만큼 이스라의 죄는 중했고 하나님의 노여움은 컸다.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도한다고 다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도 할 수 밖에 없기에 자비와 구원을 호소할 뿐 응답은 하나님 소관이다. 중보기도의 거절은 ‘심판의 피할 수 없음’과 ‘여호와의 인내의 한계를 넘은 죄악의 정도’를 전제한다. 더는 기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복음과 심판은 어떤 관계인가?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구원의 소식이다. 그런데 성경은 구원의 소식 말고도 심판의 소식이 있다. 심판의 소식도 분명 복음의 일부다. 왜 그런가?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왜 모순되지않는가?

    하나님을 정의롭고 공의로운 분이 되게하고, 죄와 불의를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심판이다. 형식적인 사랑이 사랑이 될 수 없게 하며,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게 지켜주고, 순전한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것이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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